손금

높디높은 이상을 꿈꾸는 것은
그대로 그 위 하늘을 우러르는 것과 같으니
난파한 배 상어가 에워싸면
먼저 뛰어들 것 같던 때
내 손금은 번뜩이는 이상이 득실되다

그 명제는 거짓이다
라는 에피메니데스 역설
한 옥타브 가득 쌓인 술병과 꽁초들 사이
흰 쌀밥 먹으려 가만히 내 손 못 박고
멍에 하나 쓰고 상형문자로
긴 이력서에 끝이라고 또 쓰고
우체국으로 달려가며 노을 진 하늘을
손등으로 가리다

이상이 없으면 추억 속에 살고
이상을 가진 자는 추억을 만들며 산다

우연히 펴본 일기장
갈피에 붙어 있는 꽃잎과
영양실조에 걸렸던 지적재산권 속
추억의 육신을 빌려 복원되는 존재
굳은살 없는 내 손금을 보다

저 손은 얼마나 세상의 잡음에 담갔기에
보이지 않는 손금을 만들었을까?
네 손금의 색깔도 나와 같을까?

마지막 노을진 하늘 보며
시퍼렇게 녹슨 못 빼던지고
나 지금 끝없는 한 몸으로 서다

높디 높은 이상은 그대로 그위
하늘을 우러르는 것과 같으니
내 손금에 번뜩이는 이상이 득실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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