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는 바퀴가 없으면 날지 못한다

landing gear
기차를 보는 것도 희귀한 일이었던 촌구석에서 비행기가 날아가는 걸 보는 날이면 난리가 났었다. 꼬리에 하얀 구름을 실타래처럼 풀어놓으며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비행기를 보며 쌕쌔기라고 불렀다. 하늘을 가로지르며 쌔액하는 소리를 내서 그렇게 불렀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빠르지도 않았던 전투기였지만 그 시절에는 푸른 창공에 남긴 한줄기 하얀 자국이 사라질 때까지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제는 비행기 탄다는 말이 그 시절 신작로를 냅다 달리던 버스 정도 타는 일인지라 날아가는 비행기가 더는 경외의 대상이 되지 못한 지 오래됐다. 날아가는 비행기도 숨소리를 죽이며 지나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시끄럽다며 동네에서 항의하는 시대다. 비행기 태우지 말라는 소리가 주변에서 가끔 들리는 걸로 봐서는 비행기를 대신할 뭔가가 아직은 없는 듯싶다.

섣달 그믐날이 정월 초하루가 되었다고 희망찬 새해가 되리라곤 꿈에도 기대하지 않은지 오래됐고, 이루지 못할 결심을 애당초 하지 않은지 진작됐지만 마음이 자연스레 새삼스러워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정량적 새해 목표가 정성적으로 슬그머니 바뀌는 건 세월 탓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시나브로 변한 것도 있다. 젊은 시절이었으면 비행기가 나는 데 가장 중요한 부위는 엔진이라거나 뽀대 나는 날개라고 말했겠지만 요즘은 바퀴라고 말한다. 잘 날던 비행기가 착륙하기 직전에 바퀴를 내리지 않으면 큰일 난다. 바퀴가 없으면 이륙은 꿈도 못 꾼다. 그렇다고 엔진이나 날개의 중요성이 떨어졌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바퀴처럼 눈길조차 받지 못하던 부위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눈여겨보게 됐다는 말이다.

이렇듯 갈채받지 못하지만 그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하는 바퀴 같은 존재가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일등만 예찬하던 오만과 편견에 대한 반성일 수도 있고, 밀레니엄과 함께 사라진 낭만파에 대한 향수일 수도 있다. 어쩌면 초근목피 하던 시절에 먹던 끼니를 건강식이라고 칭송하면서부터 그랬는지도 모른다.

사면받은 아무개 회장님이 동계 올림픽을 유치하려고 비행기를 탔다는 소식보다 바퀴가 굴러가도록 말없이 눈을 치우는 우리 시대의 수많은 무명인에게 갈채를 보내며 시작하는 정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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