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 - 시베리아 숲의 호랑이, 꼬리와 나눈 생명과 우정의 이야기

꼬리 - 시베리아 숲의 호랑이, 꼬리와 나눈 생명과 우정의 이야기
시베리아 수호랑이는 앞발 볼의 너비가 보통 10.5~13센티미터이다. 시베리아호랑이 최대의 발자국인 으뜸 수호랑이를 왕대(王大)라 부른다. 이마에는 임금 王 자, 등줄기로 넘어가는 뒷덜미에는 큰 大 자가 뚜렷한 가장 크고 강한 수호랑이다. 왕대들은 2,000제곱킬로미터(지리산 국립공원의 면적은 약 473제곱킬로미터) 이상의 광대한 영역을 돌아다닌다.

꼬리는 앞발 볼의 너비가 13.1센티미터로 엄청난 크기인 왕대다. 소금절벽에서 꼬리로 물모기를 쫓으며 사냥을 하려고 잔뜩 웅크린 모습을 처음 보면서 '꼬리'라고 불렀다. 꼬리는 왕대였지만 눈빛과 몸짓에서 세월이 묻어나는 전성기를 지난 늙은 왕대다. 꼬리는 사냥에 자신감이 부족해서 잡을 수 있을 때 많이 잡아놓으려는 생각, 탐욕으로 가축을 습격하기도 했다. 꼬리는 사람보다 굶주림이 무서워 개를 잡았지만 굶주린 배를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개 다섯 마리를 먹어도 멧돼지 한 마리만도 못하다.

늙는다는 것도 불완전했고 늙어서 스스로 생활해야 하는 것도 불완전했다. 꼬리에게 끌리는 것은 완전한 것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불완전한 것에 대한 연민이었다. 꼬리는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수호랑이다. 꼬리는 야생에 있고 나는 문명에 있기 때문에 꼬리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최선의 방식은 모르는 척하면서 서로를 배려하는 것이다.

만나고 헤어지길 반복하다 끝내 마을 건초창고에서 갇힌 꼬리를 만났다. 폭설과 혹한에 먹이감이 부족해 마을로 내려왔다 건초창고에 갇히게 된 것이다. 결코 만나지 말아야 할 곳에서 오래전 헤어진 옛 연인을 우연히 만나 늙고 시든 얼굴을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다. 식인호랑이라는 누명을 벗기려고 돈을 건네주고 마취를 하여 마을을 벗어나 풀어줬다.

꼬리의 흔적도 발견되지 않고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 꼬리가 사라진 지 14개월 후, 양지바른 바위굴 입구에서 엎드려 죽은 호랑이 주검을 발견했다. 꼬리였다.

27년의 추적과 20,000시간의 잠복으로 시베리아 호랑이를 1500시간 넘게 영상에 담은 자연문학가 박수용이 꼬리에게 느낀 연민을 들려준다. 꼬리와 함께한 시간을 진하고 생생하게 전하는 이야기는 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하다. 잠복지에서 바라보는 생명에 대한 생생하고도 유려한 묘사에 저절로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정령이 되어 시베리아 눈밭에 매화꽃을 남기며 원없이 돌아다니는 꼬리를 상상한다.

꼬리/박수용/김영사 20211210 268쪽 15,800원


덧. 전작인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김영사, 2011)은 한때 '꼬리'의 짝이었던 '블러디 메리'라는 암호랑이와 그 새끼들을 관찰한 기록입니다. 5월부터는 호랑이 흔적과 자취를 쫓고, 이르면 10월부터 6개월간 비트에서 잠복하며 호랑이를 기다립니다. 그 결과 전 세계에서 한 시간도 기록되어 있지 않던 야생의 시베리아호랑이를 1,000시간 가까이 영상으로 기록했습니다. 이 책이 영화보다 극적이고 소설보다 경이롭다는 찬사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특히 블러디 메리의 콧김과 함께 뻣뻣한 수염이 왼쪽 손등을 스치는 장면은 압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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