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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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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근식 시인 호롱불이 춤을 추는 웃풍 센 방안 화로에서 끓고 있는 청국장을 이제나저제나 새벽같이 일 나간 식구들을 기다리며 할미가 들었다 놨다 하는 사이 가을 국화꽃을 붙인 창호지 넘어 소복소복 눈 쌓이는 소리가 들리고 문풍지는 어제처럼 요란하지 않고 조용할 때 보리밥 묻어둔 아랫목 이불에서 대굴빡만 쏙 내민 철없는 손주 놈은 설에 먹었던 가래떡을 조청에 찍어 먹자며 칭얼댑니다.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능력주의와 불평등 - 능력에 따른 차별은 공정하다는 믿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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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지위 세습에 대해 크게 반발하면서도, 막상 세습과 다르지 않은 결과로 이어지는 능력주의 시스템에 대해선 지나치게 옹호적이다. 신분제와 세습제라는 것이 절대 악처럼 묘사될수록 능력주의는 절대 선인 양 오인되었던 것이다. (8) 능력주의는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같은 인류의 오래된 비례적 정의관에 닿아 있기 때문에 강렬한 호소력을 지닌다. 능력주의에 대한 연구들 중 상당수가 능력주의를 가장한 세습주의, 사이비 능력주의를 비판하면서도 결론에 가서 '진정한 능력주의'를 요청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능력주의적 사고방식은 그만큼 떨쳐 내기가 쉽지 않다. (9)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 내부에서 활발하게 작동하면서 체제를 정당화한다. 능력주의가 평등을 대체하면서 불평등에 대해 분노하는 운동도 능력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능력주의는 분명히 차별이지만 차별로 인식되지 않고 오히려 '평등', 더 정확히 말하면 '공정'으로 인식된다.(19) 능력주의의 대표적인 비유는 달리기 등의 경주이다. 이때 우리는 출발선(기회)이 같았는지, 규칙(과정)은 공정한지, 이로부터 도출된 서열과 승패(결과)가 정당한지를 보게 된다. 하지만 우리 사회나 삶은 개개인이 참가하는 경주나 시합이 아니다. 경주나 시합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일부일 뿐이다. 사회와 삶 전체를 경주로 보면 결국 우리는 끊임없이 서로의 속도와 기록을 재기 위한 시험과 평가로 생애를 채워 나가야 한다. 불필요한 경쟁과 무의미한 고통이 다수에게 요구된다. 이에 집중하다 보면 평가와 차별의 룰을 만들고 시행하는 권력은 가려지게 된다. (31) 능력의 현실태인 점수는 인간을 오직 하나의 비교 값으로 투명하게 만든다. 한 인간을 둘러싼 가문, 경력, 사상 같은 온갖 요소들을 제거하고 오직 점수로 본인 자신과 혹은 타인과 비교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사람들은 점수를 보면 한 개인의 능력을 직관적으로 안다고 생각하고

성조기를 든 이에게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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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즈음 부시가 물었다. "사람들이 왜 우리를 미워하지?" 펜타곤 조사단이 답을 찾았다. "그들이 우리를 미워하는 건 우리가 그들에게 한 일 때문"입니다. 그리 보면 북한 사람들은 왜 저렇게 미국을 미워할까? 답은 간단하다. 미국이 "그들에게 한 일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한 사람들은 왜 저렇게 미국을 사랑할까? 이 역시 답은 간단하다. 미국이 자신들에게 한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 이혜영 1 그렇습니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전에는 모든 비극의 배후에는 영국이 있고, 1945년 이후에 일어난 거의 모든 전쟁, 테러, 내란과 비극의 배후에는 미국이 있습니다. 금세기 최고의 공공 지식인 노엄 촘스키는 미국을 '불량국가'이며 세계 최고의 '테러리스트 국가'라고 부릅니다. 미국이 힘을 행사하는 방식은 마피아와 같다며 "미국의 이데올로기에는 미국 예외주의라고 하는 개념이 있습니다. 미국은 자애롭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라는 개념이지요. 이 개념에는 두 가지 오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폭력과 야만으로 점철된 실제 역사적 기록이지요. 또 하나는 예외주의가 미국의 독특한 산물이라는 생각입니다. 과거의 모든 제국주의 중심부는-영국에서 프랑스, 네덜란드에 이르기까지-폭력을 행사하면서 자신은 자애롭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2 라고 비판합니다. "전쟁은 하나님이 미국인에게 지리를 가르치는 방식이라고 한다. 전쟁은 미국인의 지리 수업 시간이다. 그래서 이 나라는 전쟁 없이는 살 수 없다. 베트남, 라오스, 아프간, 이라크, 리비아. 이렇게 이 책의 순서를 그냥 따라가면 된다. 아주 쉽다. 그러면 나온다. 우크라이나!" 3 그리고 지금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나옵니다. 집회에 태극기와 성조기, 이스라엘 국기를 나란히 들고나오는 이들에게 미국이 우리에게 한 일을 찾아보라고 권합니다. 개구리 겨드랑이에 털이 나는 게 빠를 정도로 쇠

시인의 말 - 김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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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새벽빛 그리고 허황들에게 사과하고 싶다 밤의 입국 심사/김경미/문학과지성사 20140825 186쪽 9,000원 왜 그러는가 별은 또 내게 왜 주는가 언제 무엇으로 다 갚으라고 무한대의 빚부터 안기우고 시작하는가 1 이별은 그녀가 사랑을 유지하는 유일한 자세 멀리 떨어지는 것은 누군가를 얻는 유일한 방식 2 아직도 시킨다고 따라나서는 것도 아직도 청춘이 시키는 일이라고 믿는 청춘이 있다는 것도 다 청춘이 시키는 일이다 3 너무 재미있어도 고단하다 잦은 서운함도 고단하다 4 누가 누구와 헤어지는 건 언제나 전대미문의 일정이다 5 밤의 입국심사서를 써야 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6 음력은 음력대로 양력은 양력대로 충격이어서 피곤한 날은 입술 대신 달력이 부르튼다 7 이목구비에 직업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8 땅 위의 국경들 끝없는 듯해도 발밑은 언제나 같은 물속입니다 9 당신 몰라? 인생은 안 바꿔주는 거요 10 바늘이 무던함을 배워 열쇠가 되었다는데 11 살아온 날의 절반보다 시를 쓴 날이 더 많은 시인에게서만 나는 느낌이 있다. 밤, 청춘, 그리움, 기다림, 자책, 슬픔, 첫사랑, 애인, 이별, 상처, 중년, 실패 그리고 '지나온 날짜들 너무 쓰라리고 갖고픈 날짜들 너무 멀었던' 나를 빤히 쳐다보는 시간이 있다. 시 한 편 한 구절마다 왕성한 청춘까지 반추했지만 끝내 환불을 못 한 중년만 남았다. 지구의 위기가 내 위기인가 자세와 방식 청춘이 시키는 일이다 오늘의 결심 전대미문(前代未聞) 연애의 횟수 그의 달력 공부 마흔 세상의 기척들 다시 쓰다 불량품 소사(小史) 열쇠

지금은 선생님 시대

선생(先生)이란 '먼저 살아가는' 사람이겠는데, 단지 연장자라는 뜻으로 말고, '내가 살아보지 못한 어떤 삶을 먼저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새기면서 말이다. 당신은, 당신이 살아낸 그 삶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내가 모르는 어떤 것을 아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에게 배울 것이 있다. 판사에게 식당 종업원은 선생님이고 의사에게 아파트 경비원은 선생님이다. 누구나 다른 누구에게 선생이다. 일단 선생님이라 부르고 나면, 최소한 반말을 하거나 때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 신형철, 「 누구나 누구에게 선생님 」(경향신문 20210125) 누구를 어떻게 부르는 것은 참 애매하고 어렵습니다. 제가 입사한 1990년 초에는 이군, 박군, 미쓰 리로 불렸습니다. 간혹 미스터 박이라고 부르는 상사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직급이 없으면 성별을 구분하지 않고 아무개 씨로 불렀습니다. 테레비에서 누군가를 아무개 님이라고 소개할 때입니다. 세기가 바뀌며 기업은 수평문화를 지향한다며 ○○○ 님, ○○○ 프로, 아담, 이브 등등으로 부르자고 하지만 실패했습니다. 조직사회는 '님'자를 붙이든 아담과 이브로 부르든 말든 사회적으로는 무조건 '씨'를 붙여 "대통령 ○○○ 씨, 전직 대통령 ○○○ 씨, ○○○ 씨"로 부르면 좋겠지만, 신형철 평론가가 지적했듯이 "상대를 실제보다 낮추기는 미안하지만 더 높이면서 손해 보기는 싫은 것"이 호칭입니다. '동무'라는 좋은 말로 대동단결하여 부르면 좋지만 이북이 선점하며 빼앗겨 선뜻 부르기도 어렵습니다. 관직에서 퇴임하면 그 전 직급(혹은 직책)으로 부릅니다. 일면식도 없는 이를 식당에서는 '이모'로 부르고, 길거리에서는 아저씨, 아줌마로 부르고 있습니다. 신형철 평론가가 제안했듯이 선생이란 '내가 살아보지 못한 어떤 삶을 먼저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 으로 새기면

에세이 만드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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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는 억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 사람이 살아온 대로, 경험한 만큼 쓰이는 글이 에세이다. 삶이 불러 주는 이야기를 기억 속에서 숙성시켰다가 작가의 손이 자연스레 받아쓰는 글이 에세이다. (13) 잘 팔리는 에세이와 좋은 에세이 사이에는 때론 어마어마한 간극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는 그 둘 사이에 분명한 접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접점을 만들고 찾아내는 일을 나는 편집자로 일하는 동안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14) 책 제목을 뽑아야 하는 이 결정적 순간에는 편집자가 아니라 순수하게 독자로 돌아가야 한다. 에세이 속 문장과 단어를 천천히 즐기고 필사하듯 메모하며, 각각 다른 페이지에서 발견한 단어들을 자유자재로 연결해 보는 이 본문 탐험의 여정은 제목의 역역을 확장해 준다. (37) 누가 훔쳐볼까 무서운 그 실패한 제목들을 볼 때마다 제목은 편집자가 어느 날 번뜩이는 영감을 받아 일필휘지로 짓은 것이 아니라 무수한 삽질 끝에 겨우 찾아내고 발견하는 것이란 생각을 자주 한다. (43) 띠지 문안은 편집자의 간판이다. 독자의 눈에 '띄지' 않으면 띠지가 아니라는 말은 그저 출판계에 떠도는 말장난이 아니다. 띠지 문안을 쓰는 요령은 의외로 간단하다. 어떻게든 이 책이 눈에 띄게끔, 팔리게끔 쓰는 것이다. (46) 책을 파는 일, 특히 에세이를 판다는 것은 과격하게 말하자면 '작가가 제 삶의 일부를 파는 일'이다. 작가의 경험과 삶 가운데 가장 예민하고 잊을 수 없는 부분을 내다 팔아야 한다. 나는 책 만드는 과정에서 그 두려움과 무게감, 그로 인한 파장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그와 동시에 작가가 삶의 일부를 떼어 내 만든 책이 외면받지 않고 잊히지 않도록, 어떻게든 독자에게 선택받는 에세이를 만들려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편집자가 힘주어야 할 일이 바로 띠지 문안 만들기다. (53) 좋은 데는 이유가 없어도 되지만, 싫은 것, 불가능한 것, 심지어 디자인을 다시 해야만 하는 상황에는 반드시 근거와 방향

가을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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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걷기연맹에서 인증하는 제29회 원주국제걷기대회(The 29th Wonju Two Days Walk)가 28∼29일 열렸습니다. 출발 전에 몸풀기 체조를 합니다. 완보한 참가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할 때쯤 공연도 했습니다. 참가자 중 고고학적으로 최연소이지만 어떤 휴먼보다 진지하게 걷기를 준비하는 우주에서 유일한 생명체였습니다. 완보 후 유모차에서도 지칠 줄 모르는 눈빛으로 다른 휴먼들을 관찰하더군요. 옛 강원감영터에 있는 600년 넘은 느티나무에 가을이 한창이었습니다.

樂書 굥교롭다

이두나 일곱시간 동안 담배 피우다 술 마시다 키스하다 담배 피우다 술 마시다… 더문 쏴도 쏴도 총알이 떨어지지 않던 독립군 신파를 달까지 가져가야 했나요. 근무 원래 조물주는 하루 만에 천지창조를 하고 6일 동안 쉬었는데 훗날 휴먼 권력자들이 왜곡하지 않았을까. 조물주라도 6일 연속 근무는 무리였을 거라는 건 휴먼 빼고 다 알고 있을 거라는 가설을 진지하게 증명할 때지 싶다. 비건 풀빵은 비건, 붕어빵은 안비건으로 정리합시다. 가을 독서의 계절이 아니라 독감의 계절입니다. 사부작사부작 건사합시다. 김행랑 저도 부끄럽고 이게 지금 대한민국 ▨▨ 현실입니다. 유인촌 전원일기를 쓰려면 金行지나 流人村으로는 가지 말고 사부작사부작 빙 돌아가세요. 어용교수 80년대 어용교수 물러가라 훌라훌라 하면 어용교수는 쪽팔려서 얼굴을 숙이며 자숙하는 척이라도 했답니다. 그때 훌라훌라하며 데모했던 학생 중 몇몇은 지금 교수가 됐고, 그중 몇몇은 어용교수보다 더 뻔뻔한 어용교수가 됐습니다. 변한 걸까요 아니면 원래 종자가 그랬던 걸까요. 참말로 궁금합니다. 서열 식사를 끝마치기 전인데도 반찬통 뚜껑이 하나둘 덮인다면 당신의 서열은 꼬래비일 겁니다. 꼰대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을 보다 말았다. 예전처럼 재미가 없더이다. 《레이더스》를 극장에서 엄청 재밌게 봤던 소년은 늙은 꼰대가 됐습니다. 노동자 사원증을 목에 걸고 점심으로 뭘 먹을까 하며 기웃기웃할 때 음지에서 노동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 덕분에 대한민국은 겨우겨우 지탱하고 있는 걸 체감했습니다. 특히, 코로나 시절을 되새겨 보세요. 간호, 택배, 돌봄, 청소 등등 노동자 중에 아주 밑에 있는 노동자(자기도 노동자이면서 하대하는)들이 사회를 겨우겨우 돌렸잖아요. 또다시 하는 얘깁니다만 당신은 재벌이 아닙니다. 노동자이면서 노동자인 줄 자각하지 못하고 자본가(이익집단)에게 투표하면 영원히 당신은 자본가들이 반기는 호구입니다. 약 30%에 당신이 있답니다. K-

우리가 꿈꾸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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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촛불 이전에 태어났지만 촛불 이후를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는 사람들입니다. 지금은 촛불이 세상을 바꾸었고, 촛불이 변화의 첫 단추를 끼워놓은 상황이지요. 촛불이 우리에게 준 과제는 촛불이 일어났던 원인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불평등을 평등으로, 불공정을 공정으로,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평화의 정착으로, 이 세 가지가 우리에게 떨어진 시대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이 촛불 후 시대라지만 여전히 함께 살려고 하기보다 우월한 지위와 강한 힘을 이용해서 약자를 괴롭히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많습니다. 공정의 문제는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에 드러난 아주 큰 문제입니다. 공정하지 않은데 뭐하러 노력을 합니까? 편법을 쓰지요. 불공정을 공정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촛불이 우리에게 부여한 역사적 과제인 불공정의 해소, 그 첫걸음은 법원과 검찰을 개혁하여 권력층에 대한 봐주기 수사와 처벌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불평등을 평등으로 바꾸는 과제에 대해 알아보지요. 제가 지금 이야기한 평등이란 사회적 격차의 해소를 가리킵니다. 격차를 해소할 수 없다면 적어도 완화해야 합니다. 불평등은 다른 말로 '기회의 불균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과의 불균등'과는 다릅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기회를 받아야 합니다. 적어도 기회는 균등해야 약자와 강자가 공존하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한국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사회적 격차입니다. 불평등의 해소란 바로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는 것, 일자리에서 차별받지 않고 일한 만큼 제대로 받는 것, 그래서 모두가 스스로 노동해서 먹고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불평등의 문제 전부를 최저임금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 사회에서 강자와 약자가 공존할 수 있도록 하는 첫걸음은 될 수 있습니다. 호주는 1년에 한 번씩 최저임금을 발표합니다.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호주에서는 정규직 최저임금과 비정규직 최저임금이 따로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비정규직 최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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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혈질이고 매 순간 자기감정에 충실한 손 여사. 고봉밥을 먹는데도 살이 안 찌는 손 여사. 작정하고 한풀이를 할 수 있었던 건 노동의 순간뿐이었던 손 여사. 전라도 사위는 안 된다는 손 여사. 손 여사는 보수다. 정의롭지는 못해도 불의와는 싸울 수 있는 인간 악바리인 딸. 손 여사가 얌체, 똑똑이, 잘난척쟁이라고 하는 딸. 아담과 바라라는 고양이와 십여 년을 함께 사는 딸. 계절의 이름 봄이 아니라 '보다'에서 가져온 '봄'이라는 이름의 딸은 진보다. 자식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절대 무심해질 수 없는 부모의 마음 덕에 딸은 진보의 가치를 접했고, 진보적으로 사고하게 되었다. 다르지만 다른 모습 그대로 함께할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게 되었다. 관계는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잊히는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되면 놓쳐버린 관계에 대한 후회가 밀려든다. 딸이 빨갱이라서 빨갱이 좌파 고양이는 안 봐준다는 손 여사가 보수라고 해서 엄마 취급을 안 할 것인가? 손 여사 역시도 딸이 진보라고 해서 딸 취급을 안 할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보수 엄마와 진보 딸 사이에 생기는 충돌 사이에서 가족이기 때문에 보듬어야 하는 마음이 있다. 졸지에 아담과 바라가 빨갱이 좌파 고양이가 됐지만 손 여사는 오랫동안 돌봐줬다. 생활형 좌파와 우파는 그렇게 공생한다.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김봄/걷는사람 20200810 176쪽 13,000원

상식의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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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는 우리가 가지고 있던 선진국에 대한 고정관념을 흔들어놓았다. 한국은 선진국을 무조건 배우고 따라잡으며 여기까지 왔지만 이제 배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또한 우리를 따라 배우는 나라들에게 기준을 제공하는 역할이 주어지기도 하는 때가 온 것이다. (19) 국민소득 3만 불이라 해도 공사장에서 떨어져 죽는 일이 흔하다면 선진국이라 할 수 없다. 또한 부모에게 맞아 죽는 아이가 있는 한 복지국가가 아니다. 분명한 것은, 생활고로 자살하는 일가족이 있는 한 1인당 국민소득 3만 불은 위선이라는 것이다. (78) 〈기생충〉이라는 한국영화에 세계가 환호한다는 것, 그런데 그 작품이 한국 사회 계급갈등의 깊고 어두운 골을 비춘다는 것, 통쾌하면서도 떨떠름한 이 기분은 한국인이라는 이 신나고도 괴로운 신분이 제공하는 아이러니다. (82) 갈등 자체는 강도가 높지 않지만 체감하는 갈등의 강도는 높다는 것. 실제 사회불안요인에 비해 불안심리가 훨씬 과장돼 있다는 것. 그것이 미디어 과밀 사회의 심리적 환경이다. (95) 개화기 이래 우리 역사에서 기자들은 처음엔 '몽매한 민중을 계몽하는 지식인'이었다. 그리고 사회의 지능은 언론과 함께 진화해왔다. 정치가 그렇듯 언론도 그 사회의 수준과 같이 간다. 기자의 질이 떨어지면 사회의 질도 떨어진다. '기레기'라는 멸칭이 유행하는 시대는 기자들뿐 아니라 한 사회로서도 좋지 않다. 기자가 '기레기'라는 말을 들어도 되는 사회라면 그 사회가 거대한 쓰레기장이라는 얘기다. 오랫동안 신문기자들은 정치권력에 순응하든 저항하든 월급이 많든 적든 엘리트 집단이었는데 좋은 의미의 엘리트 의식이 사라지는 건 슬픈 일이다. (128) 정치권력이 부드러운 얼굴을 갖게 되고 절대권력에 대한 공포가 사라졌을 때 공포는 애정이 아니라 혐오와 무시로 바뀐다. 일종의 보복 내지 보상심리다. (151) 군부가 무력화된 시대에 검찰이 정치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검찰에 대한 견제

우리에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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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의 언어가 판을 친다. 이것이 한국 사회의 변혁을 가로막는 최대의 적이다. 거짓 언어로는 현상을 파악할 수 없고, 현상을 파악하지 않고서는 현실을 변화시킬 수 없다. (5) 불안은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본원적인 힘이며, 사회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숨은 지배자다. 불안은 인간을 길들이고, 소진시키며, 예속시킨다. 불안은 비인간적인 체제를 유지시키고 강화하며, 변혁을 차단하고 저지한다. 불안은 무한 경쟁의 논리 속에서 심화되고 일상화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불안은 생명을 죽인다. (27) '인간에 대한 예의'는 우리 사회가 가장 결여하고 있는 품성인 것 같다. 인간을 존중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태도가 너무도 모자란다. 특히 사회적 약자는 온전한 인격체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감정노동자'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비인간적, 비인격적 대우는 상상을 초월한다. 난생처음 전화 통화를 하는 사람에게 "고객님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하도록 강요하는 사회는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사회다. (30) 해방 이후 대한민국은 네 개의 체제를 기축으로 작동해 왔다. 첫째는 정치 영역의 '수구-보수 과두 지배체제'이고, 둘째는 경제 영역의 '재벌 독재 체제'이며, 셋째는 사회 영역의 '권위주의 체제'이고, 넷째는 한반도를 둘러싼 '냉전 체제'이다. 바로 이 네 요소로 구성된 '구체제'가 이 나라를 '헬조선', '절망사회'로 만든 주범이다. 촛불의 외침은 바로 이 구체제를 변혁하라는 것이다. (44) 불안을 통해 지배하는 자는 일상의 미시권력이다. 그들은 공론장의 거시권력보다 힘이 세다. '박근혜 시위'에서 볼 수 없었던 가면이 '조양호 시위'에서 등장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대통령은 내놓고 비판할 수 있어도, 시장은 그럴 수 없다. 광장의 거시권력보다 일상의 미시권력이 더 무서운 것이다. 힘겹게 쟁취한 정치

다정소감 - 다정이 남긴 작고 소중한 감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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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하다가 한 시대의 정신으로 각광받으면서 윤리적 노팬티 상태가 패션인 양 포장되며 쏟아지는 무례한 독설들(61)'로 세상에 유해함을 흩뿌리는 시대입니다. 제사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의 집 여자들이 동원되어 고생해서 만든 음식을 바치어 정성을 나타내는 남녀차별적 의식(79)'이라는 생각을 미처 못했습니다. '남에게 충고를 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꼰대가 아니라고 믿지만, 남의 충고를 듣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꼰대가 되어가는 걸 모르고 사는(70)'지 반성했습니다. 여전히 '백지에 별생각 없이 점 하나를 찍고 말 때, 누군가는 그 점에서부터 시작하는 긴 선을 그리려 한다는 걸 알아채지(135)' 못하며 사는지 뒤돌아봤습니다. 신파언어차력쇼, 한강의 기절, '하루'라는 음반에 숨겨진 보너스 트랙, 가장 게으른 방식으로 부지런 할 수 있다거나 민폐를 전단지처럼 뿌리고 다닌다거나 국물이 흘러나오고 눈물이 흘러나가면서, 다정한 패턴은 마음의 악력도 만든다는 표현은 역시 김혼비답습니다. 50대가 30대에게 너도 내 나이 돼보면 안다는 거꾸로 인간에게 배웠습니다. 축구를 해서 가장 좋은 점은 집주인이랑 잘 싸우게 됐다는 우아하고 호쾌한 축구인 김혼비가 들려주는 다정에 대한 소감과 감상을 잘 읽었습니다. 김솔통 같은 글을 쓰고 싶은 루브르 언니로 남길 기대합니다. 다정소감/김혼비/안온북스 20211013 228쪽 15,000원

녹즙 배달원 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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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젊은데, 언제 멀쩡한 일을 할 거냐는 물음에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녹즙을 배달하는 강정민. 봉급은 최저임금을 1000원 넘을까 말까 하는 수준이지만 미래의 민주시민을 키우는 미인가 어린이집 가짜 양호교사인 김민주. 꼴리는 그림만 그리다가 그림체가 저질스러워졌고, 귀엽고 동글동글한 학습만화용 그림을 그리다 그림체가 호빵처럼 변했지만 웹툰을 그리고 싶은 강정민. 평생소원인 인도에 가서 여행작가가 되려고 코딱지만큼 적금을 붓고 힌디어를 배우는 김민주.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학력이나 지성이 있을 거라고는 절대로 믿지 않는 한국 사회. 대통령 부인처럼 아주 높은 신분이거나, 낮은 데로 임하여 다른 이들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사람들만이 '여사님'이라고 불리는 한국 사회. 피라미드의 맨 마지막에 위치한 배달원들을 탈탈 털어서 위쪽 사람들을 배부르고 따뜻하게 사는 한국 사회. 거지끼리 동냥자루 찢는 꼴을 만드는 한국 사회. 이런 한국 사회에서 돈 적게 주고 감정 소모해야 하는 일은 여자들이 도맡아야 합니다. 여자가 어떻게, 여자가 감히, 그 말에서 모든 여성 억압, 나아가서 범죄가 시작됩니다. 한국이 여자한테 그렇게 만만한 나라가 아니라서 한국에선 여자가 미친년이 안 되면 살지 못합니다. 생각해. 계속 생각해. 생각하는 걸 그만두면, 그때부터는 정말 지는 거다. 여자로 사는 거 힘들다고 생각하는 걸 멈추면, 그때부터는 진짜 지는 겁니다. 나주집에서 순대국을 싹 비운 강정민과 인도로 간 김민주처럼 김현진 작가는 다음 20년도 계속, 쓰길 바랍니다. 녹즙 배달원 강정민/김현진/한겨레출판 20210428 420쪽 14,000원 덧. 오탈자 75쪽 10행 메일이 열어 보니 → 메일을 열어 보니 95쪽 13행 에일에 관한 짧은 시* → 에일에 관한 짧은 시**

유독 그 집만 바글바글한 이유

요즘 유행하는 두툼한 생삼겹살보다는 얇은 냉동삼겹살을 좋아합니다. 예전에 완전히 구워지지 않은 삼겹살을 먹고 탈이 난 이후로 차돌박이처럼 빨리 구울 수 있는 냉삼을 더 좋아하게 됐습니다. 생삼겹이 대세이다 보니 냉삼을 먹자고 하면 번번이 무시당합니다. 지난 금요일 저녁에 아주 오랜만에 냉삼을 먹으러 갔습니다. 손님으로 가득해서 왁자지껄하더군요. 다행히 구석에 상이 하나 비어있어 둘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냉삼 3인분과 소주와 맥주를 한 병씩 주문했습니다. 상차림이 번개같이 차려지고 줄을 맞춰 냉삼을 구웠습니다. 소맥에 냉삼을 쌈에 싸 먹다 보니 깻잎이 떨어져 직원과 눈을 마주치려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쌈을 들고 오더군요. 쌈이나 쌈장, 밑반찬이 떨어지면 달라기 전에 후다닥 채워주고요. 슬쩍 다가와서는 술병이 불판에 가까이 있으면 데워진다며 반대편으로 멀찍이 옮겨주고, 휴대폰에 기름이 튄다며 상 밑으로 내려도 놓고요. 우리가 일어나 계산할 때쯤 기다리던 다음 손님들이 바로 앉았습니다. 그 집만 손님이 바글바글한 이유가 있더군요. 한 수 배웠습니다.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다고 말한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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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보다 나아졌다'는 하나의 팩트만이 부유한다면, '그때 그 시절 덕택에' 집집마다 자동차 굴리는 것 아니냐는 사람이 등장한다. 군부독재를 긍정하고 나아가 일제강점기도 우리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놀라운 사람이 이 땅에 있는 이유다. (16) 행복과 노력을 결부시키면 위험하다. 특히, 사회가 흔들릴 때의 이런 조합은 '넘어진 사람'의 뒤통수를 가격하는 부메랑에 불과하다. 다수의 비극이 소수의 희극에 덮이면 되겠는가. 우리는 결코 공평하게 위기에 처하지 않았다. 불행은 가장 아래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의 삶부터 야금야금 씹어 먹는 굉장히 정직한 녀석이다. (37) 자본주의적 시점에선 신의 한 수였다. 불안한 일자리 형태를 많이 만들수록, 노동자들끼리 다툰다는 예측은 완벽했다. 바늘구멍을 통과한 을(정규직)에게 갑(기업)이 괜찮은 보수를 지급하면, 사람들은 '노력이 정당하게 보상받았다'면서 알아서 박수치고 선망한다. 그러면 노동자들 사이에는 공정이란 단어로 포장된 벽이 생겨 을은 결코 섞여서는 안 될 병, 정, 무로 철저하게 구분된다. 그리고 자신이 을 정도는 되리라 희망하는 취업 준비생들은 병, 정, 무의 요구를 마치 자신의 자리를 뺏는 것처럼 느끼며 분노한다. (46) 불평등을 '줄이는' 안목을 키워주는 교육을 고민하지 않고, 불평등에서 '벗어나는' 묘수만을 나열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파할 사람은 다름 아닌 교사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양극화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면서 순응하고, 구체적인 절망을 파괴하는 것을 체념한 학생들은 어설픈 희망의 빛에 매료되어 대학의 서열화를 신봉하며, 가족 모두의 힘을 빌려 피 말리는 입시경쟁에 매진할 것이다. (87) 시험의 공정성은 과거보다 상대적으로 개선되고 있을 뿐이지 절대적일 수 없기에 그 결과로 타인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 당연한 것을 가르치지 않았던 교육 시스템에 길들여지면, 논리적으로 사람에 대한 혐오를

마스크걸 - 연대하는 여성은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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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 변태성 남성이라는 생물에 대한 아주 적절한 자연발생적 반응에 따른 우발적 협력의 이로움이 개와 모성애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으로 인해 찰나의 우주에 끼치는 근본적 기여에 따른 바람직한 변화를 보여줬습니다. 한마디로 재밌다는 말입니다. 모든 죽음은 연속살인이 아니라 연쇄반응으로 보였습니다. 분노하는 인과관계에 공감했고, 복수하는 인간관계에 납득했다는 뜻입니다. 우린 마스크 하나씩은 가지고 있습니다. 마스크를 쓴 여자는 더 연약합니다. 그래서 연대해야 합니다. 우발적 연대로 또라이 남성을 죽였다면 자발적 연대는 또라이 페니스를 줄일 수 있습니다. 마스크걸은 단막극이지만, 마스크 인생은 연속극입니다. 어떻게 행동할지는 자명합니다. 만국의 여성이여, 연대하여 더 강해지시라! 마스크걸에게 죽은 주오남의 엄마 김경자 역을 연기한 염혜란 배우가 보여준 복수는 최고의 열연이었습니다.

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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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통해 나는 새로운 사고방식을 배울 수 있었다. 과학적 사고에서는 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규칙들을 세우지만 이후 그 규칙들은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다고 본다. 이토록 자유롭게 지식을 추구하는 사고방식이 나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11) 아인슈타인은 순식간에 앞서갔다. 먼저 고전역학에서의 움직임, 즉 중력이 없는 상태에서 물체들이 보이는 움직임에 대한 설명을 상대화했고(특수상대성이론), 그다음에 중력이 있는 상태에서의 움직임으로 넓혀갔다. 이것이 '일반상대성이론'이다. (36) 공간은 이렇게 일차원 물체인 루프들로 짜여 있으며, 이 루프들이 세 개의 차원상에서 서로 엮이면서 삼차원의 직물을 형성하게 된다. 티셔츠 표면도 멀리서 보기에는 매끄러워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돋보기로 보면 실을 가닥가닥 셀 수 있는 것처럼, 공간 역시 우리 눈에는 연속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매우 작은 차원에서는 각각의 루프를 셀 수 있게 된다. (59) 과학계는 동화 같은 곳이 아니다. 아이디어를 도둑맞는 일은 다반사이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빼앗거나 가장 중요한 공을 자신에게 돌리는 등 새 아이디어를 수립하는 최초의 인물이 되려고 기를 쓰고 있다. (64)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과학적 발견은 그저 과학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일지도 모른다. 과학을 통해 발전된 세계관이 분명하고 정확한 의미에서는 '거짓'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상에 대한 여러 해석을 가질 수 있으며, 각각의 해석들 역시 어느 정도까지만 진실이라고 여겨질 수 있다. (80) 과학적 사고의 힘은 '실험', '수학', '방법론' 따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 힘은 과학적 사고의 특징, 즉 스스로에게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 이것은 자신이 확언한 내용까지도 의심할 수 있는 능력이며, 자신의 신념은 물론 가장 확실했던 신념까지도 두려워하지 않고 시험대에

스트리밍 이후의 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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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는 전 세계 1억 800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한 대표적인 글로벌 스트리밍 서비스다. 인터넷 net 과 영화 flick 의 합성어인 넷플릭스는 DVD 유통으로 시작해 전 세계에 콘텐츠를 제공하는 스트리밍 플랫폼 서비스로 성장했다. (8) 넷플릭스를 중심으로 발전한 스트리밍 서비스는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이런 서비스를 일컫는 용어 OTT는 'Over The Top'의 약자로 영화나 방송 등 미디어 콘텐츠를 셋톱박스 없이 인터넷으로 연결된 디바이스로 보내는 것을 뜻한다. (14) 리드 헤이스팅스는 "넷플릭스의 경쟁 상대는 수면 시간"이라고 말한 바 있다. 스트리밍 사업자들이 이용자의 관심을 목표로 삼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사업자들은 한정된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확보하고 맞춤형 서비스 기능을 향상시키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결국 넷플릭스가 초점을 맞추는 기술과 콘텐츠 투자는 모두 독자의 관심을 겨냥하고 있다. (16) 경쟁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소 가운데 핵심은 가격, 인터페이스, 콘텐츠다. (22) 저널리스트 토드 스팽클러 Todd Spangler 는 넷플릭스가 지속하고 있는 막대한 콘텐츠 투자를 빈지투자 binge-spending 라고 일컬었다. 영상을 한꺼번에 몰아보는 빈지뷰잉 binge-viewing 처럼 대규모 자본을 한꺼번에 투입하는 것을 의미하는 용어다. (39) OTT가 TV 단말기가 아닌 인터넷을 이용한 동영상 소비를 의미한다면 스트리밍은 동영상을 실시간으로 자유롭게 소비하기 위해 구축된 환경을 의미한다. (50) 스트리밍 시대의 이용자는 소비의 공간뿐 아니라 시간도 선택할 수 있다. 몰아보기가 일종의 사회적 현상이 된 이유도 동영상을 소비하는 문화적 실천 행위가 이용자의 삶에 깊숙이 침투해 이용자의 주도 아래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52) 이제는 누구나 콘텐츠 제작자가 될 수도 있다. 미디어 영역에서 생산자와

로버트 오언 - 산업혁명기, 협동의 공동체를 건설한 사회혁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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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오언은 1771년 영국 웨일스 중부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1858년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오언은 7세에 학교에 입학했지만 9세에 학교를 떠나 일을 하게 된다. 10세가 되었을 때 런던으로 와 18세까지 점원으로 일한다. 18세에 섬유 기계 공장의 주인이 되고, 29세에 뉴 레너크 New Lanark 에 있는 큰 면화 공장의 경영자가 된다. 오언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시기는 초기 산업혁명 시대로 온갖 빈곤과 학대가 넘쳐나던 시기였다. 오언이 태어나기 1년 전에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의 특허권을 얻었다. 애덤 스미스의 《 국부론 》은 1776년에 출간됐다. 18세 되던 해인 1789년에 프랑스혁명이 터졌고, 면화 산업의 발전을 가능케 했던 새로운 기계들이 널리 도입되던 시기였다. 뉴 레너크의 운영권을 쥐게 된 1800년부터 전국 통일 노동조합이 갑자기 종말을 맞았던 1834년까지 오언은 기념비적인 업적을 이루었다. '뉴 레너크는 공장 개혁뿐만 아니라 동시에 대중 교육의 선구자가 되었으며, 1830~1834년의 사건들을 보게 되면 노동계급이 최초로 이루었던 폭넓은 단결 운동의 지도자'였다. '영국에서 사회주의 운동과 협동조합 모두 공히 그 최초의 체계적인 주창자는 로버트 오언이었다(47)'. 오언은 1800년 1월 뉴 레너크 공장의 최고 경영자가 되자 '뉴 레너크를 단순히 성공한 공장이 아니라 교육 그리고 도덕적 물질적 개혁에 관련된 사회적 실험들을 연이어 계속 펼쳐나갈 실험실로 삼고자(111)' 했다. 당시 공장 노동자들 중에 아이들은 다섯 살에서 열 살 사이였다. '여섯 살짜리 심지어 그보다 더 어린 아이들을 공장에 정규적으로 고용하여 딱 한 번의 휴식 시간만 준채 14시간 혹은 그 이상을 부려먹는 것이 관습이었던 당시'에 오언은 '자기의 공장에 열 살 이하의 아이들은 들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는 고용 금지 연령을 열두 살까지로 올리기'를 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