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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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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박근혜 탄핵 사태 때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아동·청소년은 이듬해 대선에서 투표하지 못했다. 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선거법 연령을 19세로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동·청소년은 '보호와 배려의 대상'이지만 동시에 천부인권의 주체로서 '현재의 시민'이다. 즉 '성장하는 시민 becoming citizen'일 뿐만 아니라 '현재의 시민 being citizen'이기도 하다. 현존하는 시민이므로 당연히 시민으로 대우해야 한다(23)'. 우리나라 아동·청소년은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하고 국민의 지위를 인정받지만 참정권은 소외되었다. 우리나라 19세 미만 아동·청소년은 정당에서 활동할 수 없다. 근로기준법 제64조에서는 최저 근로 연령을 '15세 이상자'로 규정하고, 민법상 혼인은 '18세 이상'이면 가능하다. 선거법 연령만 '19세'로 규정한다. 18세는 혼인과 동시에 성인의 권리와 의무를 갖지만 정치적 참여 영역에서만 권리를 제한받아 형평성에 어긋난다. '독일의 녹색당은 연령 제한이 아예 없다. '당의 기본 가치와 목표에 동의하는 모든 사람'이면 당원이 될 수 있다(78)'. 성인들은 그들의 의사 결정에서 오는 이익의 축소를 우려하기 때문에 '아동·청소년이 가능한 정치적 의사 결정의 영역에 늦게 진입하기를 바란다(54)'. '40세인 사람이 16세인 사람보다 그들을 대표하는 더 좋은 정당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연구는 없다(124)'. '19세 미만의 국민을 일일이 통제하려는 '유모 국가 nanny state'의 관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107)'. '세계는 21세에서 18세로, 이제 16세로 시민의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125)'. '우리는 재산, 성별, 인종의 장벽을 하나씩 무너뜨리고 인권의 영역을 확

조선, 1894년 여름 - 오스트리아인 헤세-바르텍의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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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일주를 하던 나는 1894년 여름 일본을 떠나 미묘한 상황에 처해있던 조선으로 여행을 시도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의 남부 지방은 정부에 대한 봉기가 극심했고, 동아시아의 두 강대국인 일본과 중국은 조선의 지배권을 차지하기 위해 대대적인 전쟁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이 전쟁은 세계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사건이다. 따라서 중국과 일본 그리고 조선의 정치적·문화적 관계를 이해하기에는 적기였다. (4) 누군가 나에게 부산과 그 주변에 살고 있는 조선인의 비참한 생활은 그들 스스로 초래한 것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원하기만 한다면 그들은 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고, 더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관리들이 도둑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애써 돈을 모아봐야 이들에게 강탈당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생활비와 담뱃값 이상으로 돈을 벌 필요가 있겠는가? 실제로 푼돈이라도 남으면, 은밀한 곳에 숨기거나 땅에 묻는다. 부유한 상인들조차 이런 방법을 사용한다. 하지만 돈을 숨겼다가 발각되었는데도 바치기를 거부하면, 대부분 전 재산을 몰수당한다. 이들은 자기들끼리도 그렇지만 낯선 이방인에게도 매우 정직하다. 절도와 강도는 비교적 드물며, 살인은 더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 5년간 전체 구역에서 살인은 두 건밖에 없었다. 살인자는 머리가 잘리는 처벌을 받았다. (24) 조선 땅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알기 위해 이 나라를 찾은 여행자에게 부산은 엄청난 실망을 안겨준다. 그 이유는 조선에서 두 번째로 큰 항구가 조선의 영토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조선과 아무런 연관도 찾아볼 수 없는 철저한 일본 도시이기 때문이다. (27) 나중에 나는 부산보다 북쪽에 있는 도시들에서도, 조선인이 얼마나 게으르고 느려 터진 민족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건장한 체구의 조선 남자들은 모두 담배 파이프를 입에 물고 담배 주머니를 허리춤에 차고 있었다. 담배 피우고 빈둥거리는 것이 남자들의 유일한 소일거리처럼 보였던 반면, 여자들은

우선 집부터, 파리의 사회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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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프랑스의 임대주택은 역사부터가 다르다. 한국의 임대주택 역사는 1988년에 '영구임대주택'이라는 최저소득층을 위한 주택을 짓기 시작해서 이제 30년을 넘어간다. 반면 프랑스의 사회주택은 19세기 중반부터 시작되었다. '프랑스의 첫 번째 사회주택은 기업가인 장 바티스트 고댕(Jean Baptiste Godin)이 1858년부터 1883년까지 건설한 노동자 주택이다. 그는 공장 노동자에서 기업가로 성공해 많은 자산을 모았는데, 노동자 시절에 마주했던 열악한 주거 환경을 기억하고 자신의 재산을 노동자들을 위한 주택을 짓는 데에 사용했다(84)'. 약 500여 채의 노동자 주택을 지었다. 고댕이 노동자주택을 건설하던 시기에 사회주택은 다른 기업가들과 도시로 퍼져나갔다. '프랑스 전국에서 기업가를 중심으로 지어지던 사회주택은 1894년에 최초로 사회주택에 대한 법률이 만들어지면서 본격적으로 확산되었다(85)'. '프랑스의 노동자주택 및 사회주택은 법률 제정 이전에도 법을 통해 기업가나 지자체장의 개별적인 선의의 틀을 벗어나 사회의 지원을 받는 주택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 노동자들을 위해 소수의 의식 있는 자산가가 직접 주택을 건설하기 시작한 지 40~50여 년이 지나서야 드디어 국가가 사회주택에 관여(86)'하게 된다. 프랑스에서 사회주택이 발달한 이유는 단순히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의 개념만이 아니었다. 1906년에 도시 인구가 전체의 62퍼센트에 도달하며 전염병이 창궐하고 영아 사망률이 20퍼센트에 달했다. 미래의 노동력을 감소시키는 국가적인 위험 요인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과 맞물려 있었다. 1912년에는 오늘날과 유사한 방 하나의 최소 규모를 9제곱미터로 정했다. 1919년에는 주거 환경이 열약해지는 것을 방지하는 법률을 만들었다. '1884년부터 발전된 사회주택에 대한 제도는 1930년대에 들어서 오늘날과 같은 기준을 적용하게 되었다(92)'. '1

죽은 역학자들 - 코로나19의 기원과 맑스주의 역학자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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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은 질병에 대한 조사 결과를 무기로 삼는다. 소농에게 비판을 떠넘기는 것이 농축산업, 애그리비즈니스 Agribusiness 의 위기 관리 관행이 됐다. 하지만 질병은 시간, 장소, 방법 등의 모든 측면에서 시스템의 문제이지, 특정의 누군가를 욕해서 풀릴 문제가 아니다. (34) 애그리비즈니스는 우리가 자본주의적 관계라는 과거에 계속 묶여 있게 만들기 위해 기술유토피아적 미래를 쳐다보게 만든다. 질병이 진화하는 그 상품의 궤적을 빙빙 돌게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역학자가 주로 하는 일은 서커스단 소년이 삽을 들고 코끼리 뒤를 쫓아다니는 식의 사후 관리다. 신자유주의 프로그램 아래에서 역학자나 공중보건 기관은 치명적인 감염병을 부르는 최악의 관행들을 합리화하면서 시스템이 실패한 뒤 뒤치다꺼리를 하고, 그 대가로 펀딩을 받는다. (36) 세계 곳곳에서 자본이 소농이 가진 땅과 숲으로 침투하고 있습니다. 그런 투자 때문에 숲이 사라지고 질병이 출현할 환경이 만들어집니다. 이 광대한 땅이 가진 기능적인 다양성과 복장성을 없애고 예전에는 묶여 있던 병원균들이 지역의 가축과 주민 사이로 들어오는 스필오버 spillover 가 일어나게 해 놓고는 토지 이용을 효율화했다고 주장하는 식입니다. 간단히 말해, 자본의 중심지인 런던이나 뉴욕이나 홍콩을 질병의 근원지로 봐야 합니다. (44) 애그리비즈니스는 수억 명을 죽일 수 있는 바이러스를 선택적으로 진화시키면서 수익을 추구하고 있는 거예요. (...) 이런 기업은 방역에 위험한 문제를 일으켜 놓고도 그 비용을 얼마든지 외부로 전가할 수 있습니다. 가축에서 시작해 소비자, 농장 노동자, 지역 환경, 정부와 사법 체계에 비용을 떠넘기는 거죠. 그 어마어마한 피해에 따른 비용을 모두 기업 화계에 반영한다면 지금 같은 농업 기업들은 존재할 수 없어요. 자기들이 저지른 해악을 돈으로 물어낼 수 있는 기업은 하나도 없어요. (46) 발병 지역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역학을 만들어 낸 세계의 경제적 요인들 사이의 관계를 무시한 것이

부디, 얼지 않게끔, 드디어 휴면하는 휴먼이 출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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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알레르기가 있다고 소문난 송희진과 무더운 사무실에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최인경은 같이 베트남 출장길에 올랐습니다. 민소매 티에 적갈색 머리를 한 희진은 관종으로 불리며 더운 게 싫은 사람입니다. 인경은 여름이면 화장이 땀으로 무너질 걱정이 없어 부럽다는 말을 듣는 사람입니다. 체질마저 상극이어서 교류가 없었던 두 사람은 베트남 출장길에 전혀 상상하지 못하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인경의 몸이 상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변해버린 걸 희진이 처음 알아챘습니다. 둘은 베트남에서 땀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오히려 기운이 넘치는 인경이 변온동물로 변해버렸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열대 기온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변온인간으로 변했지만 국가기관에는 알리지 않았습니다. 국가에 대한 불신 때문입니다. 대신 희진은 변온인간이 된 인경을 돌보기로 했습니다. '영영 변온동물로 변해버린 것이라면, 가장 큰 고비는 여름이 끝나고 서늘한 가을을 지나 혹한의 추위가 다가오면서부터 시작될 것이 분명하다. 대충 계산해보면 반년도 더 이후의 일이니 안심할 수도 있을 법하지만, 만일 지금 지내는 이 여름이 나에게 무언가를 변화시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면, 남은 시간을 결코 허투루 보내서는 안 된다(49)'. 열대 기온에서 살아야 하는 변온인간으로 변한 인경은 자신을 돌보는 희진에게서 '그저 기분 좋은, 주머니 속에 넣어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그런 온기(126)'를 느낍니다. '특별하고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잠이 들어 오랜 시간 추위를 피한 후 날씨가 따뜻해지고 햇살이 충분해질 때쯤 일어나면 되는 것이었다. 집에서 변온동물을 키우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부러 동면의 조건을 만들어주고 1년에 한 번쯤은 쉬게 해주어야 더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그냥 무심하게 아무 일 없이, 그렇게 한겨울 한 철만 나면 된다고 했다. 그것을 당연한 일이라고 그들은 표현했다. 사람도 동물처럼 겨울을 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롱패딩

파국이 온다 - 낭떠러지 끝에 선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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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의 여지 없이 인간 해방은 자본주의 발전의 단순한 귀결로 오는 게 아니다. 또한 그것은, 자본주의는 그대로 둔 채 (흔히 선거철마다 그렇게 기대되듯) 관리자만 교체한다고 될 일도 아니다. 또한 자본주의가 스스로 만든 생산력, 하지만 그것을 더 좋은 용도로 투입하는 걸 용납도 않는 그 자본이 지닌 생산력을 "해방"시킨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다. 나아가, 공산주의나 혁명 또는 인간 해방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하는 역사적 경향성 내지 필연성 따위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28) 상품 사회 속 우리 삶의 토대란 무엇인가? 노동이 자본으로 전화하고 또 자본이 노동으로 전화하는, 일종의 영구운동이다. 즉 자본은 인간의 살아 있는 노동을 고용하여 생산적으로 소비함으로써 더 큰 자본을 만들어가고, 인간은 자신의 살아 있는 노동력을 팔아 자본의 몸집을 불려주는 대신 임금을 받아 소비를 통해 생계를 유지한다. 그런데 바로 우리 눈앞에서 나날이 벌어지는 일들은, 인간의 산 노동 living labor 을 기술로 대체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인간의 살아 있는 노동이 자본의 생산과정으로부터 추방당하는 것이야말로 자본주의 가치 생산의 토대가 붕괴되는 것에 다름 아니다. (54) 흥미롭게도 오늘날 자본주의는 수백 년 전 초창기 때의 본질적 모습을 이제는 겉으로도 잘 드러낸다. 그 본질이란 마치 자기 자신을 삼키는 괴물의 모습,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기계의 모습, 나아가 장기적으로는 사회생활의 근거 자체를 소멸시키는 사회의 모습이다. (59) 만일 자본주의를 자기 동력이 행하는 대로 내버려둔다면 결코 저절로 사회주의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폐허로만 남을 공산이 크다. 만일 자본주의라는 말이 어떤 의도를 가질 수 있다면 아마 그것은 인류의 마지막 단어가 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닐까 싶다. (61) 자본주의 시스템은 이미 오래전에 "질서의 편"이기를 그만두었다. 오히려 자본주의는 각종 "예술적" 저항을 얼마든지 자기 이

임계장 이야기 - 63세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노동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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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퇴직 후 얻은 일터에서 '임계장'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는 '임시 계약직 노인장'이라는 말의 준말이다. 임계장은 '고·다·자'라 불리기도 한다. 고르기도 쉽고, 다루기도 쉽고, 자르기도 쉽다고 해서 붙은 말이다. (7) 내 글이 나이 든 시급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모든 아픔을 온전히 풀어내지는 못할지라도, 나와 동료들이 겪었던 고단함만은 진실하게 담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 (9) 회사가 주는 것은 딱 하나, 월급뿐이다. (33)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회사의 보급이 전혀 없는 병사들과 같았다. 보급품이 필요하면 자신의 시급을 털어 넣어 조달해야 한다. 시급 일터는 다 그랬다. (35) '임시 계약직'이라는 말에 노인 '장'(長) 자를 하나 덧붙인 것이다. 그러니까 임계장이란 '임시 계약직 노인장'이라는 말이다. 나는 계약직 중에서도 '단기'인 임시 계약직이기 때문에 임계장이 된 것이다. (38) 아파트 경비원 구인 광고에는 "신체가 강건한 자"라는 문구가 많았다. 허약한 노인은 사절한다는 뜻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것이다. 거칠게 표현하면 그냥 '실팍한 머슴'을 구하는 것이었다. 사지가 멀쩡한 건강한 몸뚱이를 요구하는 것은 임계장류 직종에 공통적이었다. (51) 경비원은 그저 늙은 소라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자치회나 관리사무소에 아무것도 바라지 말아요. 빗자루나 걸레 같은 게 닳거든 웬만하면 제 돈 주고 사서 쓰는 게 마음 편할 거요. 그저 주는 대로 받고 시키는 대로 일해요. (62) 경비원을 시작할 때 선임자가 해준 첫 번째 충고는 주민과 다투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랬다. 다투면 항상 졌다. 내가 옳으면 주민은 항상 더 옳았다. (69) 잡균과 오물이 묻은 손으로는 밥을 먹을 수 없고, 주민의 심부름도 할 수 없으며, 택배를 다룰 수도 없으니, 하루 평균 손을 씻는 횟수가 서른 번, 어떨 때는 쉰 번이 넘

프로보커터 - 그들을 도발해 우리를 결집하는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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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그로꾼은 도처에 널려 있고, 앞으로도 계속 출현할 것이다. 선악을 떠나 시선을 끄는 행위 자체가 경제 활동인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26) 자본주의 체제에서 대다수가 먹고살기 위해 돈을 좇는 것처럼, 오늘날에는 주목과 관심 자체가 목적이 되면서 이를 얻기 위한 행보가 곧 경제활동이 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른바 '조회수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다. (34)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는 표현은 대중적 인기로 성패가 결정되는 연예인과 정치인에게나 어울리는 말이었다.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부고란만 아니면 무조건 언론에 나오는 것이 좋다'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다. 그러나 소셜미디어가 전 인류를 '네트워킹' 하면서 이제는 만인에게 무플보다 악플이 나은 시대가 되었다. (41) 데이터 시대 주목경제의 명제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관심은 그 자체로 돈이 되며, 주목이 가치를 규정한다. (44) 오늘날 많은 사람이 리뷰·비평·칼럼 등을 읽는 목적은 '나의 생각을 세련되고 시원하게, 설득력 있게끔 정리하고 표현해줄 누군가'를 찾으려는 것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67) 자신의 생각·느낌·의견을 본인 '따르는' 사람에게 '맡기는' 이들이 늘고 있다. 요컨대 사유를 외주화하는 것이다. 사유는 고된 일이다. 사유를 대신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동안 다른 재미있는 일을 하거나 한 푼이라도 더 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70) 프로포커터는 도발 provoke 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인터넷 등지에서 글이나 영상으로 특정인이나 집단을 도발하여 조회수를 끌어올리고, 그렇게 확보한 세간의 주목을 밑천 삼아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79) 정치 불신은 항시적 불안과 혼란을 초래한다. '혐오의 시대'는 이에 대한 반응이다. 다시 말해 불안과 혼란에 대응해 모종의 소속감과 안전감을 얻고자 '우리'와 '그들&#

김동식, 21세기에 우리네 이솝 우화를 쓰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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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죽을 때가 아니라 태어날 때 평점을 받는 선천적 능력주의 세상을 풍자하는 「인간 평점의 세상」, 「시험 성적을 한 번에 올리는 비법」으로 친구마저 굴러 떨어트리는 냉혹한 현실을 그리지만, 성적을 올리기 위해 이혼이라는 쇼까지 벌이는 부모는 절대 되지 말라는 「두 여학생 이야기」. 약한 사람, 아픈 사람을 배려해준 뒤의 공평함이야말로 인간다운 공평함이라는 「단체 감옥」, 시간을 얻기 위해 시간을 버리는 「레버를 돌리는 인간들」, 간절함보다 재미로 뛰는 사람이 이긴다는 「서울숲 게임」, 젊음보다는 재산이 많은 노인이 좋다는 「노인의 손바닥 안에서」. 자살하는 아이들을 구할 수 있게 되자 부모가 영어 유치원부터 다시 시작하려고 자살을 권하는 「다시 시작」, 성우보다는 말은 더듬지만 공부를 해야 한다며 부모가 말더듬증 고치기를 중단하는 「말더듬이 소년의 꿈」, 소수의 사물에 나타난 숫자가 아이로 변하자 숫자를 지우는 건 살인이라던 시위대도 전국에서 숫자가 나타나자 조용히 해산하는 「카운트다운」, 유기물 집합체 즉 고깃덩어리에 불과한 90%의 인류가 사회적 기준과 무관하게 영혼을 가진 사람 10%를 노예로 만드는 「영혼 인간」. 같은 인간을 계속해서 보는 건 재미가 없어 유한한 존재로 만들었다는 신의 「양심 고백」, 동물의 목소리를 바꾸면 반려동물 진료비를 전액 지원하는 삼성 반려동물 보험이 허용되자 두 반려견이 삼성! 삼성! 하며 반갑게 만나고, 쌍꺼풀 수술을 받은 반려인은 삼성, 수술비도, 삼성, 공짜니까, 삼성, 좋아라하며 대화하는 「동물 학대인가, 동물 학대가 아닌가?」. 예전 국민학교는 이솝 우화를 반강제적으로 읽혔다. 교훈은 대부분 권선징악이었지만, 그나마 재미가 있어 읽었다. 《양심 고백》에 실린 스물여섯 편의 짧은 소설은 우리 현실을 재미있게 풍자하지만, 날카롭고 예리하게 철학적 물음을 던지고 화두를 남긴다. 소설은 유쾌하지만 울림은 묵직하다. 읽는 시간보다 생각하는 시간이 더 긴 소설집 10권을 다 읽을 것 같다. 김동식 작가는 2

사막의 우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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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코 알케트비는 아랍에미리트 남자를 만나 결혼 후 남편의 고향으로 갔습니다. 두바이에서 120㎞ 떨어진 사막입니다. 여름에는 기온이 50도를 넘기도 합니다. 여기서 살기로 하면서 남편과 약속을 했습니다. 절대로 동물을 키우지 않겠다고. 일본에 잠시 다니러 간 사이에 어미를 잃은 갓 태어난 가젤을 남편이 맡기로 했습니다. 젖병으로 키워준 남편을 엄마라고 생각하는지 산책하러 나가면 따라갑니다. 아랍어로 '밤새도록 수다를 떨다'라는 뜻의 '사메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사메르가 9개월쯤 됐을 때 암컷 가젤이 왔고,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라는 뜻인 '다마니'라는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한여름의 사막에서 어린 강아지 2마리와 우연히 만났습니다. 사막에 누군가 버리고 간 강아지였습니다. 다마니가 온 이후로 '동물을 키우지 않겠다'던 약속은 '동물은 어지간해서는 키우지 않겠다'로 바뀌었지만, 기온이 50도에 가까운 사막에 남겨둘 수 없어 집으로 들였습니다. 티니와 타이니 덕분에 사막이 재미있는 일로 가득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동물은 가능하면 키우지 않겠다'로 바뀌었습니다. 거리에서 날개가 부러진 아기 비둘기를 만났습니다. 집으로 데려가는 길에 빵을 씹어서 주었습니다. 아기 비둘기에게 아랍어로 '빵'이라는 뜻의 '쿠브즈'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부러진 날개도 나았고, 매일 산책 비행을 합니다. 떠날 생각은 없어 보이고, 성격이 드세 아무도 쿠브즈에게 이길 수 없는 존재가 됐습니다. '안부 전해줘'라는 뜻의 아랍 말인 '살라미'도 입양했습니다. 사막에도 길고양이는 있습니다. 마당에서 영양실조에 걸린 새끼 고양이와 마주쳤고, 건강할 때까지 보살피기로 했습니다. 지금은 우리집 고양이가 되어 '초비초비'가 됐습니다. 이 무렵 결심은 '동물은 방법이 없으면 들인다'로 바뀌었

능력주의 - 2034년, 평등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엘리트 계급의 세습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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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4년 영국은 지능 검사가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수단이 되어 아주 평등한 능력주의 세상이다. 지능 발달을 예측할 수 있는 연령이 점차 낮아져 2020년에는 3세에도 가능해졌다. 지금은 태아 시기까지 검사가 앞당겨졌다. 1990년 무렵에 아이큐 125 이상인 모든 성인이 능력주의 체제에 속하게 되었다. 한 세기 전까지만 해도 영국은 재능 있는 사람에게도 육체노동의 굴레를 씌우면서 자원을 탕진했으며, 자기 능력을 인정받으려고 시도하는 하층 계급 성원들을 가로막았다. 사회주의자들은 유산 상속에서 생겨나는 종류의 불평등에 반대했고, 사회주의자들이 가장 발전시킨 형태의 평등은 기회였다. 교사들은 무의식적으로 같은 계급 출신 아이들을 선호했고, 구식 시험은 교양 있는 가정 출신에 유리했다. 교육의 질과 양이 모두 지능에 따라 결정되지 않으며 영리한 아이들은 학교를 너무 일찍 떠났고, 우둔한 아이들은 학교를 너무 늦게 떠났다. 지능 검사를 포기하면 다시 필기시험 결과에 의지해야 했고, 필기시험을 포기하면 교사가 작성한 내신 성적표에 의지해야 했다. 편향이 적은 지능 검사야말로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수단이었고, 사회주의자들조차 이런 결과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다. 사회 변화는 경제에서 먼저 생겼고, 압력은 국제 경쟁에서 나왔으며, 동원된 수단은 교육이었다. 기나긴 투쟁 덕분에 사회는 마침내 지적으로 우수한 사람은 꼭대기로 올라가고 지적으로 열등한 사람은 바닥으로 떨어진다는 원리에 순응하게 됐다. 현대 사상의 기본 원리는 인간은 불평등하다는 사실이며, 사람마다 능력에 따라 인생의 지위를 부여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운동의 역사적 사명은 능력에 따른 선발의 원리를 새로운 인생관으로 신봉하도록 하는 데 있다. 인간들 사이에 우열이 있다는 사고가 받아들여지자 경제적 진보는 육체노동자가 아니라 새로운 기법을 고안하는 발명가와 조직가 덕분이 됐다. 생산 증대에 기여하는 능력을 지능이라고 하며, 사회는 이 척도에 따라 구성원들을 평가한다. 마침내 임금 인상을 받을 주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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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은 소유하는 것이다. 지혜는 실천하는 것이다. 지혜는 기술이며, 다른 기술과 마찬가지로 습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지혜를 운으로 얻으려는 것은 바이올린을 운으로 배우려는 것과 마찬가지다. (7) 마루쿠스에게는 침대 밖으로 나갈 사명이 있다. '사명'이지, '의무'가 아니다. 두 개는 서로 다르다. 사명은 내부에서, 의무는 외부에서 온다. 사명감에서 나온 행동은 자신과 타인을 드놀이기 위한 자발적 행동이다. 의무감에서 나온 행동은 부정적인 결과에서 스스로를, 오로지 스스로만을 보호하려는 행동이다. (36) 삶을 성찰하려면 거리를 둬야 한다. 자기 자신을 더 명확하게 들여다보려면 자신에게서 몇 발짝 물러나야 한다. 이렇게 거리를 둘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에게 철학과 대화는 사실상 동의어였다. (...) 소크라테스가 대화를 사랑하긴 했지만 그는 대화를 그저 자기 자신이 가진 도구 중 하나로 본 것 같다. 이 모든 현명한 훈수질에는 하나의 목표가 있었다. 바로 자기 자신을 아는 것. 소크라테스는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눔으로써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법을 배웠다. (51) 소로는 다르게 생각했다. 아름다움에 익숙한 사람은 쓰레기장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아내지만, "흠잡기 선수는 낙원에서도 흠을 찾아낸다." (130) 소로는 월든에서 자유롭게 떠돌면서 스스로를 봄 seeing 에 민감하게 만들었다. 소로는 어디에도 매여 있지 않을 때, 자신과 빛 사이에 아무것도 없을 때 가장 잘 볼 수 있음을 알았다. 소로는 본인을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비본질적인 것들을 다 쳐내고 문제의 핵심으로 치고 들어가는 수학자에 비유했다. (137) 쇼펜하우어는 염세적이었던 첫 번째 철학자도, 마지막 철학자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매우 독보적인 염세주의자였다. 쇼펜하우어의 강점은 우울함이 아니라 우울을 설명하기 위해 쌓아 올린 철학적 체계, 고통의 형이상학이었다. 여태껏 염세

사냥꾼, 목동, 비평가 - 디지털 거대 기업에 맞서 인간적 삶을 지키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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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구상한 이상 사회는 훨씬 더 유명하다. 1845년 브뤼셀 망명 시절 두 사람은 공통된 이상과 인간적인 호감, 그리고 포도주에 흠뻑 취한 상태에서 처음으로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정의를 내렸다. 즉 각자가 오늘은 이 일을 하고 내일은 저 일을 하는 것이 가능한 사회, 다시 말해 직업적으로 사냥꾼이나 어부 목동, 비평가가 되지 않고도 그때그때 마음 내키는 대로 아침에는 사냥을 하고, 낮에는 고기를 잡고, 저녁에는 가축을 몰고, 저녁 식사 후에는 비평을 하는 것이 가능한 사회가 공산주의라는 것이다. (8) 미래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 〈미래 연구자〉들은 여전히 단상에서 확신에 찬 어조로 예언을 늘어놓겠지만, 미래는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우리가 어떻게 살게 될 것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고 싶으냐이다. (17) 테크놀로지가 임금 작업을 대체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테크놀로지가 통제에서 벗어나 지극히 비윤리적인 목적에 사용될 경우이다. 이러한 현상은 안타깝게도 현재의 강력한 사업 모델들에서 이미 자주 볼 수 있다. 섬뜩한 일이다. 작금의 정보 공학자, 프로그래머, 네트워크 디자이너는 더 나은 미래가 아니라 소수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 그러면서 우리의 삶과 공동생활을 정당한 민주적 절차 없이 바꾼다. (39) 20세기 인간들이 살았던 시간과 공간의 좌표는 해체되었다. 인간이 거기서 공유했던 경험과 동질성은 빠른 속도로 지나간 것과 떨쳐 버린 것이 되었다. 지금껏 우리가 알아 왔던 것처럼 디지털화의 열렬한 대변인들은 우리가 취하는 것들이 좋고 옳은지 묻지 않았다. 우리의 기존 가치와 부합하는지도 묻지 않는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시대의 흐름에 늦지 않게 제때 접속하는 것뿐이다. 이로써 도덕의 문제는 시간의 문제가 되었다. 이제 미래 사회를 결정하는 것은 판단력이나 가치 평가, 동의가 아니라 외부에 의한 강제이다. 이런 의미에서 속도는 도덕성을 뒷전으로 밀어 놓는다.

능력주의와 불평등 - 능력에 따른 차별은 공정하다는 믿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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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지위 세습에 대해 크게 반발하면서도, 막상 세습과 다르지 않은 결과로 이어지는 능력주의 시스템에 대해선 지나치게 옹호적이다. 신분제와 세습제라는 것이 절대 악처럼 묘사될수록 능력주의는 절대 선인 양 오인되었던 것이다. (8) 능력주의는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같은 인류의 오래된 비례적 정의관에 닿아 있기 때문에 강렬한 호소력을 지닌다. 능력주의에 대한 연구들 중 상당수가 능력주의를 가장한 세습주의, 사이비 능력주의를 비판하면서도 결론에 가서 '진정한 능력주의'를 요청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능력주의적 사고방식은 그만큼 떨쳐 내기가 쉽지 않다. (9)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 내부에서 활발하게 작동하면서 체제를 정당화한다. 능력주의가 평등을 대체하면서 불평등에 대해 분노하는 운동도 능력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능력주의는 분명히 차별이지만 차별로 인식되지 않고 오히려 '평등', 더 정확히 말하면 '공정'으로 인식된다.(19) 능력주의의 대표적인 비유는 달리기 등의 경주이다. 이때 우리는 출발선(기회)이 같았는지, 규칙(과정)은 공정한지, 이로부터 도출된 서열과 승패(결과)가 정당한지를 보게 된다. 하지만 우리 사회나 삶은 개개인이 참가하는 경주나 시합이 아니다. 경주나 시합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일부일 뿐이다. 사회와 삶 전체를 경주로 보면 결국 우리는 끊임없이 서로의 속도와 기록을 재기 위한 시험과 평가로 생애를 채워 나가야 한다. 불필요한 경쟁과 무의미한 고통이 다수에게 요구된다. 이에 집중하다 보면 평가와 차별의 룰을 만들고 시행하는 권력은 가려지게 된다. (31) 능력의 현실태인 점수는 인간을 오직 하나의 비교 값으로 투명하게 만든다. 한 인간을 둘러싼 가문, 경력, 사상 같은 온갖 요소들을 제거하고 오직 점수로 본인 자신과 혹은 타인과 비교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사람들은 점수를 보면 한 개인의 능력을 직관적으로 안다고 생각하고

시인의 말 - 김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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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새벽빛 그리고 허황들에게 사과하고 싶다 밤의 입국 심사/김경미/문학과지성사 20140825 186쪽 9,000원 왜 그러는가 별은 또 내게 왜 주는가 언제 무엇으로 다 갚으라고 무한대의 빚부터 안기우고 시작하는가 1 이별은 그녀가 사랑을 유지하는 유일한 자세 멀리 떨어지는 것은 누군가를 얻는 유일한 방식 2 아직도 시킨다고 따라나서는 것도 아직도 청춘이 시키는 일이라고 믿는 청춘이 있다는 것도 다 청춘이 시키는 일이다 3 너무 재미있어도 고단하다 잦은 서운함도 고단하다 4 누가 누구와 헤어지는 건 언제나 전대미문의 일정이다 5 밤의 입국심사서를 써야 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6 음력은 음력대로 양력은 양력대로 충격이어서 피곤한 날은 입술 대신 달력이 부르튼다 7 이목구비에 직업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8 땅 위의 국경들 끝없는 듯해도 발밑은 언제나 같은 물속입니다 9 당신 몰라? 인생은 안 바꿔주는 거요 10 바늘이 무던함을 배워 열쇠가 되었다는데 11 살아온 날의 절반보다 시를 쓴 날이 더 많은 시인에게서만 나는 느낌이 있다. 밤, 청춘, 그리움, 기다림, 자책, 슬픔, 첫사랑, 애인, 이별, 상처, 중년, 실패 그리고 '지나온 날짜들 너무 쓰라리고 갖고픈 날짜들 너무 멀었던' 나를 빤히 쳐다보는 시간이 있다. 시 한 편 한 구절마다 왕성한 청춘까지 반추했지만 끝내 환불을 못 한 중년만 남았다. 지구의 위기가 내 위기인가 자세와 방식 청춘이 시키는 일이다 오늘의 결심 전대미문(前代未聞) 연애의 횟수 그의 달력 공부 마흔 세상의 기척들 다시 쓰다 불량품 소사(小史) 열쇠

에세이 만드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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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는 억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 사람이 살아온 대로, 경험한 만큼 쓰이는 글이 에세이다. 삶이 불러 주는 이야기를 기억 속에서 숙성시켰다가 작가의 손이 자연스레 받아쓰는 글이 에세이다. (13) 잘 팔리는 에세이와 좋은 에세이 사이에는 때론 어마어마한 간극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는 그 둘 사이에 분명한 접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접점을 만들고 찾아내는 일을 나는 편집자로 일하는 동안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14) 책 제목을 뽑아야 하는 이 결정적 순간에는 편집자가 아니라 순수하게 독자로 돌아가야 한다. 에세이 속 문장과 단어를 천천히 즐기고 필사하듯 메모하며, 각각 다른 페이지에서 발견한 단어들을 자유자재로 연결해 보는 이 본문 탐험의 여정은 제목의 역역을 확장해 준다. (37) 누가 훔쳐볼까 무서운 그 실패한 제목들을 볼 때마다 제목은 편집자가 어느 날 번뜩이는 영감을 받아 일필휘지로 짓은 것이 아니라 무수한 삽질 끝에 겨우 찾아내고 발견하는 것이란 생각을 자주 한다. (43) 띠지 문안은 편집자의 간판이다. 독자의 눈에 '띄지' 않으면 띠지가 아니라는 말은 그저 출판계에 떠도는 말장난이 아니다. 띠지 문안을 쓰는 요령은 의외로 간단하다. 어떻게든 이 책이 눈에 띄게끔, 팔리게끔 쓰는 것이다. (46) 책을 파는 일, 특히 에세이를 판다는 것은 과격하게 말하자면 '작가가 제 삶의 일부를 파는 일'이다. 작가의 경험과 삶 가운데 가장 예민하고 잊을 수 없는 부분을 내다 팔아야 한다. 나는 책 만드는 과정에서 그 두려움과 무게감, 그로 인한 파장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그와 동시에 작가가 삶의 일부를 떼어 내 만든 책이 외면받지 않고 잊히지 않도록, 어떻게든 독자에게 선택받는 에세이를 만들려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편집자가 힘주어야 할 일이 바로 띠지 문안 만들기다. (53) 좋은 데는 이유가 없어도 되지만, 싫은 것, 불가능한 것, 심지어 디자인을 다시 해야만 하는 상황에는 반드시 근거와 방향

우리가 꿈꾸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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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촛불 이전에 태어났지만 촛불 이후를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는 사람들입니다. 지금은 촛불이 세상을 바꾸었고, 촛불이 변화의 첫 단추를 끼워놓은 상황이지요. 촛불이 우리에게 준 과제는 촛불이 일어났던 원인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불평등을 평등으로, 불공정을 공정으로,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평화의 정착으로, 이 세 가지가 우리에게 떨어진 시대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이 촛불 후 시대라지만 여전히 함께 살려고 하기보다 우월한 지위와 강한 힘을 이용해서 약자를 괴롭히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많습니다. 공정의 문제는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에 드러난 아주 큰 문제입니다. 공정하지 않은데 뭐하러 노력을 합니까? 편법을 쓰지요. 불공정을 공정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촛불이 우리에게 부여한 역사적 과제인 불공정의 해소, 그 첫걸음은 법원과 검찰을 개혁하여 권력층에 대한 봐주기 수사와 처벌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불평등을 평등으로 바꾸는 과제에 대해 알아보지요. 제가 지금 이야기한 평등이란 사회적 격차의 해소를 가리킵니다. 격차를 해소할 수 없다면 적어도 완화해야 합니다. 불평등은 다른 말로 '기회의 불균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과의 불균등'과는 다릅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기회를 받아야 합니다. 적어도 기회는 균등해야 약자와 강자가 공존하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한국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사회적 격차입니다. 불평등의 해소란 바로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는 것, 일자리에서 차별받지 않고 일한 만큼 제대로 받는 것, 그래서 모두가 스스로 노동해서 먹고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불평등의 문제 전부를 최저임금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 사회에서 강자와 약자가 공존할 수 있도록 하는 첫걸음은 될 수 있습니다. 호주는 1년에 한 번씩 최저임금을 발표합니다.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호주에서는 정규직 최저임금과 비정규직 최저임금이 따로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비정규직 최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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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혈질이고 매 순간 자기감정에 충실한 손 여사. 고봉밥을 먹는데도 살이 안 찌는 손 여사. 작정하고 한풀이를 할 수 있었던 건 노동의 순간뿐이었던 손 여사. 전라도 사위는 안 된다는 손 여사. 손 여사는 보수다. 정의롭지는 못해도 불의와는 싸울 수 있는 인간 악바리인 딸. 손 여사가 얌체, 똑똑이, 잘난척쟁이라고 하는 딸. 아담과 바라라는 고양이와 십여 년을 함께 사는 딸. 계절의 이름 봄이 아니라 '보다'에서 가져온 '봄'이라는 이름의 딸은 진보다. 자식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절대 무심해질 수 없는 부모의 마음 덕에 딸은 진보의 가치를 접했고, 진보적으로 사고하게 되었다. 다르지만 다른 모습 그대로 함께할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게 되었다. 관계는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잊히는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되면 놓쳐버린 관계에 대한 후회가 밀려든다. 딸이 빨갱이라서 빨갱이 좌파 고양이는 안 봐준다는 손 여사가 보수라고 해서 엄마 취급을 안 할 것인가? 손 여사 역시도 딸이 진보라고 해서 딸 취급을 안 할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보수 엄마와 진보 딸 사이에 생기는 충돌 사이에서 가족이기 때문에 보듬어야 하는 마음이 있다. 졸지에 아담과 바라가 빨갱이 좌파 고양이가 됐지만 손 여사는 오랫동안 돌봐줬다. 생활형 좌파와 우파는 그렇게 공생한다.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김봄/걷는사람 20200810 176쪽 13,000원

상식의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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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는 우리가 가지고 있던 선진국에 대한 고정관념을 흔들어놓았다. 한국은 선진국을 무조건 배우고 따라잡으며 여기까지 왔지만 이제 배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또한 우리를 따라 배우는 나라들에게 기준을 제공하는 역할이 주어지기도 하는 때가 온 것이다. (19) 국민소득 3만 불이라 해도 공사장에서 떨어져 죽는 일이 흔하다면 선진국이라 할 수 없다. 또한 부모에게 맞아 죽는 아이가 있는 한 복지국가가 아니다. 분명한 것은, 생활고로 자살하는 일가족이 있는 한 1인당 국민소득 3만 불은 위선이라는 것이다. (78) 〈기생충〉이라는 한국영화에 세계가 환호한다는 것, 그런데 그 작품이 한국 사회 계급갈등의 깊고 어두운 골을 비춘다는 것, 통쾌하면서도 떨떠름한 이 기분은 한국인이라는 이 신나고도 괴로운 신분이 제공하는 아이러니다. (82) 갈등 자체는 강도가 높지 않지만 체감하는 갈등의 강도는 높다는 것. 실제 사회불안요인에 비해 불안심리가 훨씬 과장돼 있다는 것. 그것이 미디어 과밀 사회의 심리적 환경이다. (95) 개화기 이래 우리 역사에서 기자들은 처음엔 '몽매한 민중을 계몽하는 지식인'이었다. 그리고 사회의 지능은 언론과 함께 진화해왔다. 정치가 그렇듯 언론도 그 사회의 수준과 같이 간다. 기자의 질이 떨어지면 사회의 질도 떨어진다. '기레기'라는 멸칭이 유행하는 시대는 기자들뿐 아니라 한 사회로서도 좋지 않다. 기자가 '기레기'라는 말을 들어도 되는 사회라면 그 사회가 거대한 쓰레기장이라는 얘기다. 오랫동안 신문기자들은 정치권력에 순응하든 저항하든 월급이 많든 적든 엘리트 집단이었는데 좋은 의미의 엘리트 의식이 사라지는 건 슬픈 일이다. (128) 정치권력이 부드러운 얼굴을 갖게 되고 절대권력에 대한 공포가 사라졌을 때 공포는 애정이 아니라 혐오와 무시로 바뀐다. 일종의 보복 내지 보상심리다. (151) 군부가 무력화된 시대에 검찰이 정치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검찰에 대한 견제

우리에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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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의 언어가 판을 친다. 이것이 한국 사회의 변혁을 가로막는 최대의 적이다. 거짓 언어로는 현상을 파악할 수 없고, 현상을 파악하지 않고서는 현실을 변화시킬 수 없다. (5) 불안은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본원적인 힘이며, 사회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숨은 지배자다. 불안은 인간을 길들이고, 소진시키며, 예속시킨다. 불안은 비인간적인 체제를 유지시키고 강화하며, 변혁을 차단하고 저지한다. 불안은 무한 경쟁의 논리 속에서 심화되고 일상화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불안은 생명을 죽인다. (27) '인간에 대한 예의'는 우리 사회가 가장 결여하고 있는 품성인 것 같다. 인간을 존중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태도가 너무도 모자란다. 특히 사회적 약자는 온전한 인격체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감정노동자'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비인간적, 비인격적 대우는 상상을 초월한다. 난생처음 전화 통화를 하는 사람에게 "고객님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하도록 강요하는 사회는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사회다. (30) 해방 이후 대한민국은 네 개의 체제를 기축으로 작동해 왔다. 첫째는 정치 영역의 '수구-보수 과두 지배체제'이고, 둘째는 경제 영역의 '재벌 독재 체제'이며, 셋째는 사회 영역의 '권위주의 체제'이고, 넷째는 한반도를 둘러싼 '냉전 체제'이다. 바로 이 네 요소로 구성된 '구체제'가 이 나라를 '헬조선', '절망사회'로 만든 주범이다. 촛불의 외침은 바로 이 구체제를 변혁하라는 것이다. (44) 불안을 통해 지배하는 자는 일상의 미시권력이다. 그들은 공론장의 거시권력보다 힘이 세다. '박근혜 시위'에서 볼 수 없었던 가면이 '조양호 시위'에서 등장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대통령은 내놓고 비판할 수 있어도, 시장은 그럴 수 없다. 광장의 거시권력보다 일상의 미시권력이 더 무서운 것이다. 힘겹게 쟁취한 정치